우리나라의 장묘 문화는 매장-봉분이 대세였던 바, 가뜩이나 좁은 땅덩이에 무덤 없는 산자락이 없을 지경이오.
땅도 부족하고 절차와 관리도 번거로워 요즘에는 매장-봉분에서 화장-납골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이긴 하오만, '선산'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는 공동납골당을 선호하지 않고, 가족납골당은 관리소홀로 유골함에 벌레가 발생하는 등 불미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때가 많소. 무엇보다 납골당은 간지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 하겠소.
이런 전차로 소햏의 백부께서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봉분이 아니면서도 간지도 나고 무엇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가족묘역을 구상하시었으니,
바로 국립묘지 방식(화장-평분-비석) 되겠소.
아직 잔디와 나무가 이식되진 않은 상태라 다소 황량하오만, 다음과 같은 모양새라오.
전남 해남군 황산면 호동리 소재, 통천최씨세장산
통천최씨 중에서 호동리 출신을 모시는 묘역이오.
앞으로는 명절 때 한 자리에서 성묘를 마칠 수 있으니, 참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소.
백부께서 짓고 쓰신 세장산비문
"희노애락의 추억이 서린 우리들의 고향 호랑이골
급변하는 세태를 거부할 수 없어
이제 조상의 유택수호와 긴 역사마저 유실할 처지
그러나 고향과 역사는 영원한 것
선령을 위로하고 베푸신 음덕을 존숭하며
죽어서도 갈 곳 없는 대도시의 현실들
세세의 안식처로 삼고자 우리 다 함께 뜻을 모아
이곳 평파곡 선산에 통천최씨 호동파 합동묘역을 조성하노니
선자선손들이여 웅강용지의 호기를 살려
더 높이 더 멀리 비상도약하여 웅지를 활짝 펼치고
정겨운 고향산천과 자신의 뿌리를 길이길이 잊지 말지어다"
이처럼 국립묘지 스타일로 조성되었소.
아직 뗏장이 깔리지 않아 황량한 모습이구료.
하나의 비석에 두 분 내외간을 함께 모셨소.
물론 이와 같이 내외간이 세 분이 되는 경우도 있소.
이 비석의 주인공은 소햏의 조부이신데, 구순의 연세로도 아직 정정하시지만, 비석을 미리 마련해두었다오.
비석 뒷면에는 족보상 상하 관계(부, 자-자부, 녀-사위, 손, 증손, 외손)를 기재하였소.
소햏의 이름도 저기 있소.
묘역에서 가장 높은 어른인 '통덕랑공 최식' 할아버지의 비석은 이와 같이 규모를 갖추었소.
뒤편에서 본 모습.
저 멀리 호동리 마을이 얼핏 보이오.
잔디 등 마무리는 금번 추석 무렵에 완료될 예정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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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추석을 앞두고 할머니 묘소 벌초하시는 소햏의 부모님이시오.
소햏은 뙤약볕 아래서 양산 쓰고 구경만 하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