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3월이라면 이북이 한창 전쟁준비에 힘쓸 때인데, 이때 인민군에 징집된 안식교 청년들이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끝까지 집총을 거부하자 인민군 당국은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 중 일부는 재징집되었다. 전쟁 기간 중임에도 이들이 집총을 거부하자 총살시킨다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지만, 인민군은 결국 이들을 비무장 병과인 피복창에 근무하도록 하거나 장애인들로 구성된 비무장 후방부대에 편입시켰다.

- 한홍구, 대한민국史(02), 한겨레출판, 2003:211p.


무려 인민군이, 무려 한국전쟁 직전에, 집총거부자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사실.
그런데 우리는(만) 왜 용납하지 못할까?
  1. 은령 2009.11.24 21:05 신고

    이해는 가오. 당시 북한의 군전력은 약간 과장을 보태면 남한 정도는 식후 간식 수준이었으니, 그 정도 관용을 베푸는 것도 가능했다고 보오. 더군다나 동맹군은 빠방한데 반해 적의 동맹들은 하나같이 발을 빼는 도중이니 거드름을 피울 만도 하지 않겠소.

    지금은 양쪽 모두 크게 한번 당해 독이 오를 대로 오른지라 섣불리 드러난 전력차로 여유를 부리기엔 개운치 않을 것이오만.

    • - 관리자 - 2009.11.24 23:11 신고

      어차피 전투력이 되지도 않는 집총거부자들을 억지로 병력화하기보다는 과감히 버리는 게 오히려 전력에는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로구료..

  2. 초보회원 2009.11.26 10:19 신고

    십여년 전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란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누가 신고를 하고, 협박을 하고 해서가 아니라 '대책 없는 몽상가', '순진한 낙관론자'... 이렇듯 아예 '무시'해 버리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 이야기 정도는 꺼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 의무소방제도란 것도 만들어져 숨통이 조금은 트인 상황입니다. 시대 정신은 변합니다. 지금은 어떤 가치(즉 국가 안보)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용되지만 곧 이것이 용납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고야님 같은 분이 이런 곳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것도 시대 정신의 커다란 변화입니다.

    • - 관리자 - 2009.11.26 14:58 신고

      물론 그렇습니다.
      제 양심은 '죽일 놈은 죽이자' 정도로 비정한 양심이라서 병역을 거부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민감한' 주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군국적인(북한보다도) 태도를 보이는지 놀라워서 블라블라해봤습니다.
      (근데 이 글 사실 몇 달 전에 써둔 건데, 사이버수사대에서 '빨갱이'라고 잡아갈까봐 비공개로 했다가 이제서야 슬그머니 공개한 겁니다. 이렇게 널리 출판된 인기서적에서 한 구절 발췌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아직 팍팍한 세상이지요.)

  3. 헌영 2010.10.22 10:23 신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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